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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사 대웅전에 앉아
    생각의 파편들 2022. 1. 21. 12:51

     

    조계사 앞을 수없이 지나 다녔지만, 정작 금당 안으로 들어가볼 생각은 못 했어요. 기도 중인 신자에게 방해가 될까봐 염려됐거든요.
     
    요즘은 거리두기 때문에 서울이 일찍 잠들어서 도심이 한적하잖아요. 그래서인지 대웅전 안에도 신도가 두세 명 뿐이더라고요. 덕분에 대웅전에 들어가보자는 동행의 말에 용기가 났어요.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쭈뼛쭈뼛 본당에 들어서니 저보다 몇 배나 장대한 대불 세 개가 실내를 꽉 채우고 있었어요. 이렇게 큰 불상을 바로 앞에서 보니 괜히 움츠러들게 되고, 자비심을 가져야만 할 것 같았어요. 
     
    대략 30분 정도 앉아 있었던 것 같아요. 벽과 기둥에 붙은 '묵언' 안내에 따라 말없이 앉아 있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들대요. 갓 앉았을 때는 화려한 내부 구조를 보고 여러 생각이 떠올랐어요.
     
    '불상이 엄청 무거운데 수미단이 잘 버티네'
     
    '전기선이 많은데 화재 걱정은 없나' 
     
    '내 두 팔로 다 안을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저 기둥과 보는 어디서 가져 왔을까? 수입산인가..' 
     
    '연등이 참 많이 달려 있구나' 
     
    다음으로는 왼쪽과 앞에 앉아계신 중년 신도에게 생각이 가닿았어요.
     
    '두 분은 무엇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계실까'
     
    '불상이 아니라 왜 불화를 향해 앉아 계시지?'
     
     
    그러다가 생각이 저 자신에게로 흘렀어요. 법당이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요즘 어떤 태도로 삶을 살고 있는지, 욕심만 부리는 건 아닌지, 삶의 불완전함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잠시 눈을 감고 손을 모았어요. 그리고는 마음가짐을 다잡았어요.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충족할 수 없는 욕망에 이끌려 다니지 말자고요. 헛된 미련은 내려놓자고 되뇌였어요. 그러니 마음에 얹힌 먼지가 조금 걷힌 것 같았어요. 
     
    짧은 성찰로 작은 위안을 얻었어요. 아마 자고 일어나면 스러질 얕은 평온함이겠죠. 그래도 종종 조계사의 삼존불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대불 앞에서라도 마음을 돌아보고 반성하다 보면, 언젠가는 제 마음도 고요함으로 가득해지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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