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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도자료로 문화유산 트렌드 읽기] 「임진왜란 웅치 전적」 사적 지정 - 임진왜란 초기, 민관이 힘을 모아 호남을 지켜낸 국난 극복의 전적지
    카테고리 없음 2023. 1. 5. 11:50

     

    💡 [보도자료로 문화유산 트렌드 읽기]
    문화재청을 비롯한 행정부처의 보도자료는 문화유산의 최신 소식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접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보도자료는 압축적이고 사실 전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해당 내용의 전후 사정과 맥락을 모른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보도자료로 문화유산 트렌드 읽기'에서는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공부할 수 있는 글을 연재합니다. 보도자료를 읽고 해당 내용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2. ○○을 더 알아보고 싶다면?'에서 본인이 흥미가 가는 자료 위주로 공부해보시길 바랍니다.

     

    목차

    1. 보도자료 전문

    2. '웅치 전투'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 [강의] 호남방어전(웅치.이치전투), 육전 최고의 승리? 영웅 이름? 4대대첩으로 바뀌어야 │황현필 한국사
    - [강의] 임진왜란의 운명을 바꾼 전투, 웅치 전투
    - [강의] 임진왜란 │ 설민석
    - [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웅치 전투
    - [탐방 기사] 임진왜란 판을 바꿨다, 영화 '한산'에 나오는 이 고개
    - [영상] 영화 '한산' 예고편

    3. 사적 지정 개요

    4. 더 깊은 공부를 위한 자료

     

     


     

    1. 보도 자료 전문

    < 임진왜란 웅치 전적 전경 > Ⓒ문화재청 제공

    보도명: 문화재청, 「임진왜란 웅치 전적」 사적 지정
    보도 날짜: 2022. 12. 30.
    요약: 의병&관군이 왜군에 맞서 싸운 웅치 전투지가 전라북도기념물에서 사적으로 승격됨.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전라북도 완주군․진안군에 위치한 「임진왜란 웅치 전적」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임진왜란 웅치 전적」은 임진왜란 초기(1592년 7월)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에 맞서 관군 및 의병이 민관 합동으로 호남을 지켜낸 ‘웅치 전투’가 발생한 곳으로 호남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조선군이 결국 승전하게 되는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 평가된다.

    • 국난: 나라가 존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태로운 나라 전체의 어려움
    • 전적지: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웅치’는 완주군과 진안군 사이 고갯길의 지명으로 웅치 일대의 옛길은 전주와 전라도 동부지방인 진안 등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선조실록」등 여러 문헌에 기록된‘웅치’는 ‘웅현’, ‘웅령’으로도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곰티’ 또는 ‘곰치’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전투가 일어난 지리적 위치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난중잡록』(조경남) 1권, 선조 25년 상, 6월 23일 이후 전주 전 만호 황박이 모집한 군사 200명을 모아 웅현에 복병했는데 웅현은 바로 전주와 진안의 경계였다. 이때에 이광이 나주 판관 이복남, 김제 군수 정담 등으로 복병장을 삼아 웅현을 파수케 하였는데 황박이 가서 조력한 것이다. 「全州前萬戶黃璞聚自 募軍二百餘名設伏于熊峴乃全州鎭安之界 也時李洸使羅州判官李福男金堤郡守鄭湛等爲伏兵將把守峴上璞爲之助焉.」

    지난 7월 개봉한 영화‘한산’을 통해 재조명된 웅치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진안을 거쳐 전주를 공격해오던 왜군을 진안과 전주의 경계였던 웅치 일대에서 막아서며 전개되었다. 왜군은 결국 웅치를 넘어 전주 부근까지 진출하였으나 전투 과정에서 많은 전력을 상실하여 전면적인 공격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전주를 공격하여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자 했던 왜군의 전략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승패를 떠나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서 의미를 가진다.

    웅치 전투를 통한 호남 수호 이후, 관군과 의병이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호남 지역으로부터 조달하는 등 임진왜란 극복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문화재청은 전라북도 완주군․진안군과 협력하여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임진왜란 웅치 전적」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2. '웅치 전투'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강의 영상] 호남방어전(웅치.이치전투), 육전 최고의 승리? 영웅 이름? 4대대첩으로 바뀌어야 │황현필 한국사

     

    [강의 영상] [임용한의 임진왜란]임진왜란의 운명을 바꾼 전투, 웅치 전투

     

    [강의 영상] 임진왜란 │ 설민석

     

    [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웅치 전투 - 디지털진안문화대전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웅치 전투 - 디지털진안문화대전

    [개설] 웅치 전투는 1592년 7월 8일을 전후로 하여 전라도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고개인 웅치에서 전주 부성을 공격하고자 하는 왜군을 호남 지역의 관군과 의병이 사투를 전개하여 왜군의 전

    jinan.grandculture.net

     

    [탐방 기사] 임진왜란 판을 바꿨다, 영화 '한산'에 나오는 이 고개

     

    임진왜란 판을 바꿨다, 영화 '한산'에 나오는 이 고개 | 중앙일보

    웅치는 임진왜란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고개다.

    www.joongang.co.kr

     

    [영상] 영화 '한산'

    웅치 전투가 사이드 플롯으로 등장합니다.

     


    3. 사적 지정 개요

    웅치 전투 전적비 Ⓒ문화유산포털
    웅치 전투 전적비 Ⓒ문화유산포털

    □ 지정명칭 : 임진왜란 웅치 전적(壬辰倭亂 熊峙 戰蹟/The ImJin War UngChi Battlefield)
    □ 지정종별 : 사적
    □ 소 재 지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51 일원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산289 일원
    □ 지정면적 : 문화재구역 11필지 232,329㎡
    □ 관리단체 : 전라북도
    □ 지정가치
    ㅇ 웅치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에 맞서 관군 및 의병이 민관 합동으로 호남을 지켜낸 치열한 전투지로 호남 방어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됨.

    ㅇ 웅치 전투를 통한 호남 수호 이후, 관군과 의병이 경기도와 경상도로 진출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호남 지역으로부터 조달하는 등 임진왜란 극복의 계기를 마련하였음.

    ㅇ 이는 초기의 열세를 극복하고 조선군이 종국에는 승전하게 되는 역사적 전투가 벌어진 장소로 국난 극복의 전적지로서 의미를 가지므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고자 함.

     


    4. 더 깊은 공부를 위한 참고 자료

     
     

    '문화재유랑단'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한 시민 모임입니다.
    누리집: urang.kr
    커뮤니티 공간: cafe.naver.com/urang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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