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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방 모임 후기] 경기도 여주시 탐방 (2020. 08. 22. 토)
    프로그램 후기 2020. 8. 27. 12:55

    참석자: 3명 (벌, KM, JH)

    탐방 경로: 영월루 - 신륵사 - 세종대왕릉 - 이포보

    글: 벌

    사진: JH, 벌


    문화재 유랑단의 첫 탐방은 남한강을 끼고 있는 조용한 도시, 여주입니다! 여주는 쌀이 유명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둘러볼 것이 많았습니다. 첫 탐방은 벌, JH, KM 3명이 다녀왔습니다.

     

    영월루

    현충탑 앞의 벌과 KM

    여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영월루(영월공원)였습니다. 사실 점심을 먼저 먹으려고 했는데, 가게  장사 준비가 되지 않아 식당에서 가까운 영월루에 갔습니다. 영월루는 남한강과 여주시가 아주 잘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두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나라와 가족을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탑이 눈에 띄었습니다.

     

    현충탑을 지나 영월루로 향합니다. 영월루에 올라서니 남한강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강 건너 숲 뒤에는 우리가 점심 식사 후 가게 될 신륵사가 있습니다. 

     

    'ㅇ'이 많은 게 뭔가 동글동글하다.

    영월루 주변은 영월공원이라는 이름 하에 현충탑, 세종대왕 기념물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습니다. 

     

    영월루의 현판

    영월루의 영월(迎月)은 '달맞이', '달을 맞이하다'라는 뜻입니다. 아마 전기 불빛이 하나도 없던 그 옛날, 그 당시 사람들은 영월루에 올라 남한강에 비친 달의 모습을 감상하며 놀았을 것같니다(물론 권력자 한정으로...).

     

    신륵사 

    점심을 먹고 향한 곳은 '신륵사'입니다. 식당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신륵사는 신라시대 때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아주 오래된 절인데요. 그만큼 문화재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문화재 관리비라는 명목으로 1인당 3천원을 내고 일주문으로 들어섭니다.

     

    신륵사의 일주문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에는 문이 많습니다. 조선 궁도 그러하고, 양반가의 집에도 문이 많습니다. 절 역시 본당에 가려거든 여러 개의 문을 거쳐야 합니다. 보통은 '일주문' → '천왕문' → '불이문' 순으로 지나게 됩니다. 다만 궁궐처럼 양식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절에서나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문은 '일주문'입니다. 일종의 대문이랄까요?

    일주문은 우리가 사는 곳(사바)과 극락의 경계를 상징하기도 힙니다.  일주문은 보통 그 절의 '격(格)'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찰들이 일주문에 품을 많이 들이는데요. 신륵사 역시 일주문이 상당히 크고, 화려했습니다. 저기 기둥을 받치고 있는 돌 하나가 사람 하나보다 두껍고 높다하면.. 어떨지 감이 오시죠?

     

    ※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의 산문(山門) 중에 첫 번째 문이다.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기둥을 한 줄로 세워서 일주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주문의 현판에는 보통 산 이름과 절 이름이 쓰여 있다. (출처 - 능인선원 능인 불교대학교 “사찰의 구조”. 능인선원. 2018년 8월 28일.)

     

    불이문을 지나는 벌

    일주문을 지나 잠시 걷다보면, '불이문'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문은 일주문 다음으로 무서운 사천왕이 내려다 보고 있는 '천왕문'이 나오는데, 신륵사에는 바로 불이문으로 이어집니다. 불이문의 '불이(不二)'는 진리가 둘이 아님을 뜻하고, 궁극적으로 번뇌와 해탈도 둘이 아님을 깨닫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해탈할 수 있게 되므로 '해탈문'이라고도 불립니다.

     

    구룡루와 하트 모양 포토존

    불이문을 지나면 신륵사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본당 앞에는 '구룡루'라는 누각이 하나 있었는데, 낯설게도 그 밑에 하트 모양(...) 포토존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바로 본당으로 향하지 않고, '강월헌'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절벽 위에 있는 강월헌

    신륵사를 가게 되면 누구나 감탄하게 되는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앞에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절벽 바로 위에 세운 강월헌이라는 정자에서 보는 경치가 아주 대단합니다.

     

    아이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활용해 촬영한 남한강

    강월헌에서 보이는 남한강의 모습입니다.

     

    신륵사 다층 전탑

    다음은 신륵사의 다층 전탑입니다. 여기 전(塼)이라는 글자는 '벽돌'을 뜻합니다. 그래서 전탑이라는 건 벽돌로 쌓은 탑을 말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전탑은 층수가 모호해서 문화재 이름 자체가 '다층'으로 등재되어 있는데요. 맨 위를 한 층으로 보느냐 마느냐에 따라 6층으로 보이기도 하고, 7층으로 보이기도 해요. 저는 7층으로 보이는데, 여러분이 이 탑이 몇 층으로 보이시나요? 

     

    구룡루

    구룡루에서 바라본 극락보전의 모습입니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인데요. 우리가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할 때의 그 아미타불이 이 아미타불입니다.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인데요. 풀어보자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아미타불은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한 보살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건물) 다음으로 많은 법당이 극락보전이라고 합니다.

     

    관음보살상(좌) - 아미타부처상(중앙) - 대세지보살상(우)

    극락보전를 들여다 가보았습니다. 법당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우리가 보이는 방향에서) 왼쪽에는 관음보살이 있고,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있습니다. 이 불상들은 정확한 제작 시기가 밝혀져 있는데요. 광해군 2년인 1610년이라고 합니다. 정확히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 덕분이라고 하네요.

    발원문: 불교에서 수행자가 정진할 때 세운 서원이나 시주의 소원을 적은 글. 조성 발원문에는 불상을 조성한 장소와 시기 그리고 조성 사유, 발원자, 시주자 등을 기록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로.

     

     

    관음보살은 아마 일반 사람들이 부처님 다음으로 많이 알고 있는 보살이 아닐까 하는데요. 석가모니가 입적한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중생들이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하여 민간으로부터 상당히 추앙받는 보살입니다. 

     

    대세지보살은 다른 보살들처럼 혼자서 법당이 조성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아미타불과 함께 갖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서 중생을 열반에 이를 수 있게 도와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륵사 다층 석탑

    신륵사 본당을 들여다 보고 마당으로 내려오면, '신륵사 다층 석탑'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광택을 유지하고 흰 대리석의 빛깔이 매우 아름다운데요. 이 석탑도 손실되어서 지금은 8층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9층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기단의 면에 용 무늬를 새겨놓은 게 보입니다.

     

    보제존자석종(좌), 보제존자석종비(중),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우)

    신륵사 여러 건물들을 둘러 보고, 뒤로 돌아 산 초입에 가면 계단이 주욱 이어져 있고, 그 위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석종이 보입니다. 왼쪽부터 석종, 중간 뒤쪽에 석종비, 석등 순인데요.

    '석종'이란 건 유명한 승려의 사리 등을 넣어둔 둥근 돌탑입니다.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 석종은 고려 말의 승려 '나옹 화상*'이 밀양으로 가던 도중 신륵사에 입적하게 되었고, 이후 제자들이 신륵사 뒷산 초입에 이 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보제존자는 나옹 화상의 법호입니다.

    *화상: 지혜, 덕 등이 뛰어난 승려에 대한 존칭

     

    세종대왕릉

    마지막 문화재 코스는 세종대왕릉입니다. 한국 사람 중에 세종대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세종대왕릉이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세종대왕릉은 원래 태종(아버지 이방원)의 능인 헌릉 옆에 소헌왕후와 합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종 대에 여주로 이장하게 됐는데요. 세종 사후 문종-단종-세조-예종 대를 거치며 계유정난(수양대군의 반정), 예종의 왕비 장순왕후가 아들을 낳다 죽고, 그 아들도 죽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생기자 사람들은 세종의 묘 자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고, 결국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게 된 것입니다.

     

    세종대왕릉의 홍살문

    세종대왕릉은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도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야트막하게 경사진 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와야 하는데요. 사진처럼 홍살문이 보이기 시작하면, 세종대왕릉에 다다른 것입니다. 홍살문부터 정자각, 왕릉까지는 돌로 다듬어진 길이 있는데요. 여기서는 약간 주의가 필요합니다. 길을 잘 보면 왼쪽이 약간 더 높게 되어 있는 것이 보일텐데요. 이 왼쪽 길은 신과 제사를 담당하는 제관(향과 축문)이 다니는 '신향로'이고, 오른쪽이 왕이 다니는 '어로'입니다. 우리는 이 무덤의 손님이니 오른쪽으로 걸어갑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왕릉에 왔다고 해서 왕릉 코앞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왕릉 아래에 있는 정자각까지만 갈 수 있습니다. 옛 왕도 제사를 지내러 왔을 때, 이 정자각에서만 제사를 지내지 왕릉까지는 올라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자각: 왕릉 앞에 지어진 ‘丁’자형의 제사건물. 

     

    정자각 뒤로 왕릉이 보입니다.

    정자각 동쪽에는 계단이 2개가 있는데, 앞쪽에 둥그렇게 있는 계단은 '향로계'라고 하고, 뒤쪽에 있는 각진 계단은 '어로계'라고 합니다. 앞에서 홍살문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향로계는 향로와 신이 다니는 계단입니다. 왕 또한 이 계단이 아닌 뒤쪽에 있는 각진 계단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방문지는 '이포보'라는 '보'였습니다. 문화재는 아니었지만, 여주 명물이라고 하여 구경도 하고, 전망대에서 커피도 한 잔 했습니다(커피 맛은 SoSo합니다).

     

    이포보의 모습

    여주 탐방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첫 탐방이지만 특별한 테마를 정하거나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가진 않았습니다. 그저 여주라는 도시가 흥미로웠고 한 번쯤 가보고 싶었기에 큰 계획 없이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다녀 오니 탐방기도 작성하게 되고, 탐방기를 쓰기 위해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도 많았네요. 다음에 또 여주게 방문하게 된다면 그때는 또 다른 시각으로 여주를 탐방하게 될 것 같습니다.

     

     

    끝. 

    작성일: 2020.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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