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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방기] "흥인지문에서 평화시장 그리고 DDP까지" 1부
    프로그램 후기 2020. 1. 6. 12:56

    [탐방기] "흥인지문에서 평화시장 그리고 DDP까지" 1부

    [탐방기] "흥인지문에서 평화시장 그리고 DDP까지" 2부

     


     

     

    탐방 정보
    탐방 일정 : 한양도성 성곽  흥인지문(興仁之門)  평화시장 → DDP (약 600m)
    소요 시간 : 15:00~19:30
    식사 : 동대문 생선구이골목 ‘쟁반집’

     

     

    오늘 우리는 동대문역에서 만나서 동대문 일대 문화유산을 탐방하면서 시대별로 나뉜 동대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양도성 성곽,흥인지문(조선시대) -> 동대문시장/평화시장(7~80년대) -> DDP(21세기)

     

    탐방하기 전에 우리는 다양한 참고문헌을 토대로 동대문 일대의 문화유산적 의미를 조금 이해하면서 가다보니 아는 만큼 보였고 아는 만큼 느껴졌다.

     

    결론, 하루를 알차게 보냈었던 아주 멋진 탐방이었다.👍👍👍 

     


     

     

    우리는 흥인지문을 보기 앞서 제일 먼저 한양도성 성곽에 올라갔다.

    (T.M.I - 한양도성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났던 건 녹색교통지역이라고 해서 한양도성 내부에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제한이 됩니다. 라는 내용이 번뜩 생각났다.)

     8

    한양도성 성곽은 동대문 역 1번출구로 나와 반대방향으로 걷다보면 나오며, 동대문 역사공원에 있는 성곽과 연결되고 중간에 도로로 끊겨 있지만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성벽에는 이름같은 한자들이 써 있었는데 성벽을 쌓을 때  요즘 말하는 담당 관리자의 이름과 기술자의 이름, 날짜들이 쓰여 있다. 

     

     

    한양도성 성곽을 올라가기 위한 시작점.

    성벽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이 성벽은 태조5년(1396)년때  축조되었다.

    한양도성은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고,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나타내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상으로 잘 안보이지만 저 안내문은 조선시대 시기에 따른 성돌의 모양이 다르다는 걸 나타내주고 있다. 

    그래서 성벽의 돌의 모양만 봐도 어느 때 보수가 되었는지, 다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일부 성벽을 보면 오래된 성벽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성벽은 새하얗고 깨끗한 걸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성벽을 새로이 보수, 재축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여기서 과학적 건축형태를 알 수 있었던 점은!! 성벽이 올라갈수록 1cm정도 들어가서 쌓아졌다는 사실이다. 안정감있는 형태로 무게 중심을 밑쪽으로 두어 적이 공격해왔을 때 쉽게 무너지지않고 튼튼한 성벽을 만들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성곽을 따라 한 번 올라가보았다.

     

     

    이 성곽을 따라 쭉 앞으로 가다보면 혜화동의 낙산과 연결이 된다.

     

     

    다만 이 장면에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오른쪽에 보이는 교회건물이었다.

    성곽을 따라 오르면 오를 수록 다른 건물들은 다 낮아지고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으나 교회건물이 바로 옆에서 우뚝 솟아 있던 탓인지 너무 잘 보였다.

     

    19세기 말에 들어온 기독교와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성벽의 조합이라니 아이러니한 생각마저 들었다..

    마치 우리가 나중에 갈 마치 우주선같이 생긴 DDP처럼 말이다.

     

    성벽을 보며 걷다보니 성벽에는 정사각형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구멍은 TV속 역사드라마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났다.

     

     

    총안(銃眼)

     

     

    이 구멍은 총안이라고 하고 그야말로 총의 눈이다. 

    적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 총안으로 총이나 대포들을 겨누고 이 성, 한양을 지켰을터이다.

     

    성곽을 타고 올라와서 흥인지문을 향해 내려다 본 모습. 수도로서, 군사적 요충지로서 서울이 한 눈에 다 내려다 보인다.

     

     

     

     

    쭉 올라가니 하늘과 맞닿을 것만 같은 풍경과 성벽의 안정감있는 모습, 나무들과 풀과 같은 자연으로 둘러쌓인 모습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성벽을 타고 쭉 올라가다보면 중간 즈음 한양도성박물관이 나온다. 하지만 마침 한양도성박물관이 휴관상태여서 들어가진 못하였다.

    우리는 낙산너머로 가지 않고 흥인지문을 향해서 다시 내려왔다. 

     

    다들 알다시피 흥인지문이라 하면 흔히 동대문이라고도 얘기를 하며 우리나라 보물 1호로 지정되어있고 남대문(=숭례문)은 국보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예전에는 흥인지문을 기준으로 흥인지문 포함 동쪽으로는 동대문구, 서쪽으로는 종로구였지만 많은 행정구역의 변화로 인해 흥인지문을 포함한 신설동 가기 직전까지를 종로구로 지정하며 현재 흥인지문은 종로구에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급격히 발전되고 변화무쌍한 대한민국 중심에 역사그대로를 보여 줄 수 있는 문화유산이 현재의 산물과 공존하고, 그것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니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들이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음엔 따뜻한 차와 함께 더욱 오랫동안 이 경치를 마음속으로 느껴볼 것이다.☕

     

    우리는 내려와 흥인지문(=동대문)으로 향했다. 흥인지문은 한양으로 향하는 4대문 중 하나이다.

     

    [4대문]

    북문-숙정문(肅靖門) (엄숙할 , 꾀할 )

    서문-돈의문(敦義門) (도타울 , 옳을 )

    남문-숭례문(崇禮門) (높을 , 예절 )

    동문-흥인지문(興仁之門) (일어날 , 어질 , )

     

    여기서 궁금한 점❓❓❓

     

    왜 흥인지문만 4글자일까, 다른 문들은 다 3글자인데 말이다.

    문헌을 찾아보니 동쪽의 지반이 낮고 기가 약해 동쪽에서 외부의 침략이 잦았다고 생각하여 허한 기를 보충해주기 위하여 ‘갈 지(之)’자를 넣어 흥인지(之)문이 되었고 유일한 네자여서 정방형의 현판에 새겨 두었다. 

     

     

    정방형의 흥인지문 현판

     

    그리고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이라는 게 있는데 이 옹성 또한 동쪽의 허한 기를 보충해주기 위해 풍수적인 목적으로 지어졌다.

     

    흥인지문을 둘러싸고 있는 반원형의 성벽

     

    이 옹성의 특징은 낮고 두껍게 지어졌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는 총이나 대포등의 무기들이 발달되었는데 활을 이용해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있는 적에게 공격하기 위해서는 성벽이 높은 것이 좋았지만 총이나 대포등은 포물선의 형태를 그리지 않고 곧장 멀리 나가기 때문에 높게 설계할 필요가 없었다.

     

    또 성벽이 무너졌을 때에도 낮았을 때에 피해가 덜하기 때문에 낮고 두껍게 지어 튼튼함을 더했다. 그리고 위에는 파수꾼들이 지나다니면서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게 설계되었다(성벽 위 낮은 담을 '여장'이라 함) 

     

    옆면으로 가서 더욱 자세하게 보았다. 예전에는 출입이 가능하였지만 문화재의 화재사건들이 빈번히 발생되고 문화재를 안일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다보니 폐쇄되어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저런 처마의 형태와 민족의 전통문양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는 민족성이 굉장히 뚜렷한 나라이고 멋스럽기까지 하다라는 경외감이 드는 한편, 이걸 이제까지 보지 못하고 단순히 ‘동대문이네’ 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 안에 숨겨진 많은 역사와 의미를 알지 못한채로 말이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다.

     

    처마를 보다보니 웅장하고 멋스럽게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마 지붕을 보다보니 나무가 딱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지붕을 어떻게 저렇게 안정적으로 지지하고 받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전통 목재건물에서는 처마 지붕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기둥쪽에  ‘공포(栱包)’라고 하는 부재로 인해 무게중심이 분산되어서 그 무거운 지붕을 조금 더 수월하게 지지할 수 있다고 했다.  실로 처마 지붕의 무게는 어마무시하게 무거운데 수십톤에서 수백톤에 이른다고 한다. 

     

    공포는 기둥위에만 짜여 있다면 ‘주심포 양식’ 기둥사이사이에 공포가 더 짜여져 있어 무게 분산을 더욱 할 수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에는 상업적 발전으로 인해 더욱 화려하고 섬세하게 바뀌어 장식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흥인지문조선후기에 고종에 의해 다시 개축이 되어 다포계 양식의 화려한 공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선조님들의 ‘과학적 지혜가 돋보이는 양식’이라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반바퀴를 돌아 옹성의 반대편에서는 마찬가지로 총안을 볼 수 있었는데 총안 사이의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 총안도 볼 수 있었다. 자세히 찾아보니 원(遠- 원)총안은 멀리 있는 적에게 공격하기 위함이고 비스듬한 경사가 있는 총안은 근(近-가까울 근)은 가까이 있는 적에게 공격하기 위함을 볼 수 있다.

     

    조금 앞으로 삐죽하게 나와있는 구멍은 아마도 적이 성벽근처로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부어서 물리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 작성자: JSR

    ※ 평화시장, ddp에 해당 내용은 2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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