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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방기] "흥인지문에서 평화시장 그리고 DDP까지" 2부
    프로그램 후기 2020. 1. 6. 20:48

    [탐방기] "흥인지문에서 평화시장 그리고 DDP까지" 1부

    [탐방기] "흥인지문에서 평화시장 그리고 DDP까지" 2부

     


     

    흥인지문을 한 바퀴 돌아본 우리는 조선시대에서 7~80년대 한국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왔다. 청계천 다리 하나만 건너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패션의 메카 ‘동대문 시장’이 나타났다.

     

    70~80년대의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제일평화시장 등이 이 일대의 의류산업이 우리나라 전체 의류산업계의 70%가량 소화했었으며, 지금까지도 하루에 쉬는 시간도 채 없이 환기도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미싱만 열심히 돌려가며 낮은 임금을 받는 우리네 가족들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분신자살까지 하며 노동 인권을 외쳤던 전태일열사도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지면 안 될 것이다.

     

    ‘옷이 왜 이렇게 싸?’란 느낌은 가슴 아프다. 그만큼 저임금을 받으며 재봉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웃프게도 ‘사계’란 노래가 이 시절을 반영한 노래로 365일 밤새도록 미싱을 돌리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여공들의 삶을 즐거운 멜로디로 노래하고 있다. 거북이의 ‘사계’ 리메이크로 젊은 층도 알고 있는 노래지만 참 웃픈 우리 현실이 아닐 수없다.

     

    이후 생긴 대형쇼핑몰. (왼쪽부터)apm, Migliore,DOOTA

     

    80년대의 동대문을 빠져나와 우리는 DDP(Dongdaemun Design Plaza)로 향했다. DDP의 설계는 이집트 태생의 영국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를 해서 2011년 지어진 건물이다.

     

    처음에는 역사적인 문물이 많은 한국의 중심에 우주선이 불시착한 것처럼 보이는 어울리지 않는 알루미늄 철판의 이상한 건축물이라고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안을 들여다보아도 여태 알고 있던 건축의 모습과는 다르게 천장도 비정형적인 곡선을 띄고 있으며 외부모습도 어디가 입구인지, 출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기존의 상식을 깨는 건축의 모습이었다.  

     

     

    자하 하디드의 인터뷰내용을 읽어보면, DDP의 건축물은 한국의 모습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DDP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 자체로 거대한 정원 모양이다. 하디드는 역사적으로 한국인이 정원을 각별히 여긴다는 사실에 주목해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걷고, 오르다 보면 축구장 크기 옥상 정원을 만들었다. 그 곳에서 DDP를 에워싼 서울을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한옥의 매력에서 느낄 수 있듯, 정문, 후문 개념이 없는 뚫린 공간으로 만든 것은 한국 전통가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 말하고 있다.

     

    또, 동대문에 지어진만큼 동대문에 깃든 역사에도 주목했다. 하디드는 조선왕조가 아닌, 동대문 일대에 둥지를 튼 패션타운을 보고 24시간 멈추지 않고 꿈틀거리는 그곳의 기운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DDP가 탄생했다. DDP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곡선과 더불어 4만여 장의 알루미늄 패널이다. 이 많은 패널은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사람의 시선, 빛의 세기, 시간에 따라서 패널은 제각각 방식으로 번득이고 꿈틀댄다.

     

    하디드는 “곡선 위로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누군가는 이전까지 몰랐던 서울의 얼굴을 마주할 수도 있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고, 새로운 꿈을 꿀지도 모른다.라고 말하고 DDP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DDP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고 남녀노소 이곳을 즐기고 있는 것은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유구전시장이다.

     

    DDP를 걷다보면 한 가운데 새로운 땅이 나타나고 그 주변으로 DDP를 방문한 사람들이 쉬어간다.

     

    유구란 유적 안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옛 시설물 중 건물지, 주거지등의 시설물 하나하나를 일컫는 말이며, 동대문 역사공원 안에 있는 유구전시장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었다.

     

    1. 어울림광장 유구전시장

    2. 동대문 유구전시장1

    3. 동대문유구전시장2

    4. 이간수문

    5. 성벽과 치성 

     

    위의 사진이 어울림광장 유구전시장이며 이 전시장은 유구전시장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가까이 느끼고 바로 옆에서 쉴 수 있게끔 DDP 한가운데에 공존한다. 이는 이 역사를 이어나갈 후손들과 DDP를 방문한 관광객으로 하여금 문화유적을 굉장히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다. 

     

    DDP 건물을 크게 한 바퀴 돌면 나머지 유구를 볼 수 있는 동대문 유구전시장 1과 전시장 2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유구 전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특징 있는 건물은 화약을 제조하던 기관인 ‘염초청(焰硝廳)’과 훈련도감으로서 수도방위를 위한 관청이었던 ‘하도감(下都監)’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도감을 요즘의 말로 얘기한다면 국군사령부쯤이 아니었을까. 이외에도 유구전시장에는 조선의 전기, 중기, 후기별로 건축양식의 변화도 알 수 있고 도자기같은 유물도 발굴되었다고 한다.

     

    동대문 역사공원을 들린다면 유구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봐도 좋다. 여기서 나온 유물들은 동대문역사관에 전시하고 있으니 직접 보면서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건축물들을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DDP를 한바퀴 돌다보면 성벽이 다시 나타난다. 이 성벽이 한양도성의 성벽, 흥인지문과 그대로 이어져 있는 성벽이다. 이 성벽에는 치성(稚城)을 볼 수 있는데 성벽에서 나와 있는 부분이 치성이다. 

     

    치성은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로, 쉽게 말해 성벽 근처에 온 적들을 옆에서, 뒤에서 공격이 용이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간수문

    동대문역사공원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 유적 중 하나가 이간수문이다. 이간수문은 이름 그대로 두 칸으로 만들어진 물길이다. 남산에서 흘러내리다 청계천과 합류하는 물길을 위해 만든 문이다. 

     

    이 유구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보존되어 있었을까. 신기하게도 이 자리 위에는 운동장이 있었다고 한다. 2007년 운동장을 철거하게 되면서 운동장 부지를 발굴하다가 발견되었고 운동장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와 흔적, 유물들을 고스란히 땅 속 깊이 묻어버렸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더 깊이 하기 위해서는 동대문 운동장기념관을 방문해야 한다. 역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안에 자리잡고 있다. 동대문 운동장기념관과 유구들의 존재는 너무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출처 - 연합뉴스 (2018.01.30)

    동대문 운동장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1925년에 우민(愚民)정책의 일환으로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의 한국 최초 근대체육시설로 등장했다. 

     

    2007년 철거가 되기 전까지 82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서울운동장’,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뀌었으며. 지금은 일제의 잔재로 철거를 한 상태이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동대문 운동장은 흥인지문과 이어지는 성벽의 한가운데를 간통한다는 사실이다.

    ++MORE INFORMATION-------------------------------------------------
    일본제국(일제)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을 때 한반도 지배정책은 크게 3시기로 구분된다.

    1. 1910년대, 일제가 처음 식민지 지배를 했을 무렵에는 
    강압적인 식민지 지배정책을 사용했고, 산림이나 토지들을 수탈하였으며 언론이나 교육 모든 부분에서 통제권을 가지는 지배정책이었다.

    2. 1919년 3.1일 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으로 인해 기존의 강압적 지배정책 대신 회유적인 지배정책을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초등교육과 농업교육을 들을 수 있었지만 고등교육수준의 교육은 부정하였다. 이 운동장도 일제의 회유정책의 일환으로 1925년에 세워졌다.(1920년대)

    3.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지배정책이 행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창씨개명이며 한국어의 교육을 금지하고 일본어 사용을 대표적인 것으로는 창씨개명과 한국어의 사용을 강요하였다.(~1945)

     

    동대문 운동장에서 운동 경기에 출전했었던 선수들의 이름과 경기에 사용했었던 물품들도 함께 전시가 되어 있다. ‘베를린의 영웅’ 손기정 선수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손기정 선수는 1912년에 태어나 2002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21세기 초의 한국의 변화들을 몸소 겪어오셨던 역사의 산 증인이셨고, 1936년 베를린 마라톤 우승 당시, 식민지배 아래 일본 대표팀에서 일본 국기를 가슴에 달고 달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안타까운 모습과 일장기를 가리며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그의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식민 지배를 당했었던 역사도 우리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며 기록해야 할 산물이다. 동대문 운동장이 철거되기까지 그곳에서도 역사가 존재했고 애환이 깃들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기장에 쓰였던 물품들을 따로 전시해 놓은 공간.

     

    동대문의 역사성을 남기기 위해 철거되지 않은 조명탑.

     

    이제 우리는 DDP 안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DDP는 비정형 곡선 형식이 밖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안쪽까지 적용이 되었다.

     

     

    곡선이 부드럽고 예쁘게 쭉 그어지는 게 아니라 왠지 모를 삐뚤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여러 체험시설과 전시, 교육, 문화교육이 존재하는 곳이고, 지하 2층부터 4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계단을 통해 지하의 공간에서 지상 4층의 공간, 잔디언덕까지 곧바로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저 기나긴 하얀색 통로를 따라서 걸어가보기로 했다.



     

    통로를 걷다보니 약간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주위엔 아무런 조형물도 없이 눈 앞엔 오로지 하얀색의 벽과 눈부신 조명, 그 조명으로 인한 나의 그림자만이 존재했다.

     

    한 15분쯤을 통로를 통과하며 뺑글뺑글 돌면서 올라가다보니 살짝 지친 나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라는 의미의 저 표지판이 나타났다.

     

     

     

    잔디 언덕을 마주하기까지 45m 전.

     

     

    잔디언덕으로 나가기 10m 전. 설레는 발걸음으로 잔디언덕을 보러 갔다.

     

     

    🙈🙉🙊예상을 아예 안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푸르른 풀내음보다는 날씨탓인지 휑하고 말라있는 잔디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날씨가 따뜻한 봄부터는 푸르른 풀내음이 나는 DDP를 볼 수 있으니 참고하고, 우리는 계단을 통해 DDP를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이 건물의 비정형성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비정형 의자.

     

    건물의 외관만 비정형적 곡선 구조를 가진 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아이템까지 자하하디드의 손길을 거쳐 비정형적인 모습의 의자가 만들어졌다. 그녀의 섬세한 면목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자가 내 눈엔 고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자유를 표방하고 넘실거리는 역동성이 있는 고래의 모습.

     

    의자에 앉은 배민 님의 모습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데도 비정형적인 곡선의 모습은 계속 볼 수 있었다. 마치 제각각의 선들이 개성을 뽐내 하나의 거대하고 조화로운 건물을 만들 듯, 각각의 개성과 독창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이겨내며 한 사회를 만들어 낸 우리의 역사가 담겨있고, 앞으로도 만들어갈 대한민국의 의미를 담은 건물임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날 DDP에는 운 좋게도 서울과 DDP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고, 미래를 꿈꾸는 내용으로 ‘서울 라이트(SEOUL LIGHT) ’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았다.

     

     

    DDP를 한 바퀴 둘러보고 행사에 앞서 시간이 남아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우리의 저녁메뉴는 동대문 종합시장 골목에 있는 생선구이로 정했다.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오랜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곳으로 매일 싱싱한 생선을 알맞게 소금간을 한 후 연탄불이 생선을 맛깔나게 구워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생선구이 골목 가는 길

    생선구이 골목에서 생선구이집을 50년 정도 운영해오신 사장님은 처음에 생선구이 골목에서는 생선구이가 아니라 설렁탕집으로 시작했다가 우연히 반찬으로 내놓은 생선구이가 인기가 많아져 생선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하지만 이제 그 골목은 관광객들의 꼭 들러야 할 관광지의 역할로서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갔던 날은 일요일이어서 대부분 닫았지만 몇몇 곳은 불이 환하게 켜져 손님들을 맛있는 냄새로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가 갔던 생선구이집은 ‘쟁반집’이라는 식당이고 저렇게 밖에서 연탄불로 생선을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구워준다.

     

    우리는 생선구이 집에 도착해서 삼치구이를 주문하고 자칫 느껴질 수 있는 생선의 느끼함과 비릿내를 잡아주기 위해 오징어볶음을 함께 주문했다.

     

    오징어볶음(9,000원)
    삼치구이(9,000원)

     

    한 상이 밑반찬 4종류와 기본 국과 함께 알차게 나온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이런 풍경이 너무 정감가고 정말 시장이라는 느낌이 들어 사진을 한장 ‘찰칵’ 찍었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서 우리는 다시 DDP로 향했다. 평화시장의 밤거리는 낮과는 또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패션의 메카답게 상인들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실제로 동대문의 종합시장을 제외하고 밤과 새벽이 더 바쁘다고 한다.

     

    청계천을 지나 DDP로 가는 길목.

     

    청계천 위의 다리를 건너면서 청계천은 동대문의 시공간을 이동시켜주는 마법의 다리같은 느낌이었다. 청계천을 건너기 전에는 조선시대, 건너고 난 후에는 근현대로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탄 듯 이동했으니까 말이다.

     

     

     

    DDP도착 후 우리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기위해 자리를 잡고, PM 7시 시작에 맞춰서 웅장한 음악과 함께 커다란 빔으로 쏘는 DDP의 외벽 너머로 서울의 과거에 빠져들었다.

     

     

     

    대한민국의 전통 유물과 역사에 관한 영상을 보다보니 멋스러운 모습과 특유의 우아함까지 보였다. 마치 내 존재까지 고상해진 기분이었다. 많은 역사 속 사진들이 지나가고 최근의 모습도 한 점의 추억이 되어서 남겨졌고 오래된 역사에서부터 근 현대까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다.

     

     

     

    밑의 사진을 보면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볼 법한 사진으로 글로벌로 연결된 우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때때로 밤하늘의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한국의 야경과도 닮아 보인다.

     

     

    그리고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DDP의 건축 진행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철골 구조로 DDP의 뼈대를 만들던 과정이었는데 곡선의 건물인 DDP에 빔을 쏘니 더욱 더 현실감있고 역동성이 가득찬 광경이었다. 이 광경을 본 배민 님이 말하길 “DDP의 내부 트러스트 구조를 보여주는 라이트쇼는 압권이었다”라고 할 정도로 인상깊은 쇼로 각인되었다.

     

    현재의 시간이 지나고 인공지능적 미래의 모습의 모습은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은색의 물결은 마치 인공지능의 발전과 앞으로의 우리 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듯해보였고 레고의 조각처럼 보이는 물결들이 다른 색을 가지고  흐르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들이 융합이 되면서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어 서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서울과 DDP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서로 어우러져 인간인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암묵적으로 보여준 건 아닌지 다시한 번 인간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DDP의 전시를 마지막으로 하고 오늘 우리의 탐방이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 동대문이라는 한 구역에서 시대별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운 탐방이었다.

     


    ※ 작성자: JSR

     참조한 내용

    • 한국민족대백과사전[興仁之門]
    • 문화컨텐츠닷컴[흥인지문과 옹성]
    • 문화재청
    • 서울의 문화재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경인문화사, 2011)
    • 궁궐문화원
    • 한국축제정보-서울 라이트(SEOUL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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