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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그램 후기] 6월 항쟁 - 명동 중심으로 탐방하기
    프로그램 후기 2020. 10. 29. 03:46
    유랑 장소: 을지로, 명동 일대
    유랑 일자: 2020. 10. 24. 토.
    유랑 코스: 을지로 인쇄거리 → 향린 교회 → 명동성당 → 옛 안기부 터
    유랑 멤버: 벌, KM

     

    이번 유랑(탐방 프로그램)에 대해

    이번 유랑은 '명동을 중심으로 탐방하는 6월 항쟁'이었습니다. 6월 항쟁은 몇년 전 개봉한 영화 <1987>로 인해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우리 유랑단에서도 명동 일대를 직접 걸으며 6월 항쟁 당시를 상상해보려 합니다.

     

    ※ 유랑이 1대1로 진행되어 진행에 몰입하다 보니 사진 찍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현장 사진 대신 관련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1 을지로 인쇄거리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ahliakim

     오늘 유랑의 시작점은 사진 속 바로 이곳입니다. 을지로 인쇄거리인데요. 우리는 명동성당과 향린교회를 탐방하기에 앞서 87년 당시를 더욱 실감나게 상상하기 위해 인쇄거리를 시작점으로 잡았습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현재와 다른 소통 방식을 상상하기 위함인데요. 온갖 IT기기가 보급된 지금에야 70세 넘은 노인분들까지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가정용 전화 보급률이 100명 당 8.4대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집에 전화기 하나 있으면 괜찮았던 시절인거죠. 그 덕에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든 공중전화가 꽤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1988>

     6월 항쟁 탐방이라더니 갑자기 웬 전화냐고요? 시민 운동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결합하여 생기는 에너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려면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생각을 가지고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원활한 소통없이는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의 생각과 동일한 메시지를 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SNS를 사용하며 소통과 정보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6.10 국민대회 행동요강 / 출처(https://archives.kdemo.or.kr/contents/view/114)

     그렇다면 인터넷이 없는 1987년에는 어떻게 시민들을 조직할 수 있었을까요? 개인 전화도 없고, 지금처럼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정비가 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한 명, 한 명 일일이 찾아 다니며 매번 같은 얘기로 설명해야 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웃음).

     

     

    당시 지하 언론의 중심 '대동인쇄소'의 직원들 / 출처: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04/005000000200404091821355.html

     조직화의 답은 바로 작은 인쇄물이었습니다. 유인물이라고도 부르는 이 출력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세력은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노태우가 지명됨)가 열리는 6월 10일에 '국민대회'를 추진합니다. 국민대회는 서울뿐만 아니라 성남, 인천, 대전,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행동 요강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하면 대회의 일원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2 향린교회

     

    출처 - 위키백과

     

    두 번째 장소는 탐방 향린교회입니다. 6월 항쟁의 중심이 되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발기인 대회를 열었던 곳입니다. 향린교회는 명동대성당에서 걸어서 3분이면 닿을,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독재 정권이 명동대성당 주변을 예의주시하던 긴장된 상황에서 발기인 대회 장소가 노출되지 않은 것은 정말 우연과 필연이 겹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수십층의 고층 빌딩들이 향린교회를 둘러싸고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동 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 위기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행히도 일부 건물을 보존해 기억재창조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출처 - http://dabia.net/xe/photo/19235

     

    향린교회 문 기둥에는 기념비가 하나 있는데요. 6월 민주항쟁 기념하는 작은 기념패입니다. '기념비'라고 적혀 있지만, 제가 보기엔 작은 패 정도였습니다. 기념비 위에 인용되어 있는 성경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정의를 심어 평화의 열매를"


     

    #3 명동대성당

     

    출처 - 위키백과

     

    다음 장소는 바로 명동 성당입니다. 6월 항쟁 당시 서울에서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을 두 곳 꼽는다면, 여지없이 성공회성당과 명동성당입니다. 우리는 두 곳 중 명동성당을 찾았습니다. 명동성당에 마주서서 30년 전 사진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당시를 상상해보았습니다. 

     

     

    출처 - https://hi-cynthia.tistory.com/16

     

    1987년 5월 18일 월요일, 명동성당에서는 18시 30분부터 광주 항쟁 7주기 미사가 열렸습니다. 월요일이었지만, 5.18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 미사였습니다. 이 특별 추모 미사는 김수환 추기경이 앞단을 진행하고, 이어서 김승훈 신부가 강단에 올라왔습니다.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 군을 직접 고문하여 죽게 한 하수인은 따로 있다"며 고문치사사건의 진범을 읊어 내려갔습니다. 

     

     

    출처 - http://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holyplace&ctxtOrgNum=2289

     

    지금은 작은 공원과 계단들로 이루어진 명동성당 앞마당은 1987년 당시 농성의 중심지였습니다. 수많은 시민들과 수많은 전경들이 서로 대치하여 긴장감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론도 정부에 굉장히 비판적이었고, 또한 종교 시설(성당) 안으로 강제 진입한다는 게 얼마나 큰 반발이 생길지 잘 알고 있었던 전두환 정권은 '잡아가지 않을테니 해산하라고 해요'라는 지시를 내리게 만듭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estheryoo5

     

    명동성당 옆에는 옛 계성여고 건물이 있는데요. 6월 항쟁 당시 여고생들이 농성 중인 시민들에게 담 넘어로 도시락을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계성여고는 성북구로 자리를 옮겨 현재는 성당에서 고해소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4 옛 안기부 터

     

    안기부의 옛 모습과 현재 모습 (출처 - https://www.minjuroad.or.kr/location/258)

     

    마지막 마무리 장소는 옛 안기부 터입니다. "남산 끌려 간다"라는 말이 만들어진 건물이 바로 이 곳입니다. 현재는 리모델링을 통해 서울유스호스텔로 활용 중이고, 2층에는 청소년국제교류센터인 '미지센터'도 위치해 있습니다.

     

     

     

    마무리 장소인 안기부 터에서는 안기부(중앙정보부)에 대해 깊게 파기보다는 '장세동'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장세동은 전두환의 심복이었고, 지금 어르신들께는 '의리의 돌쇠'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전두환 대신 감옥에 4번이나 갔고, 죽어도 전두환에 대해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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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명동을 중심의 6월 항쟁 탐방을 마쳤습니다. 이번 유랑은 2시, 3시간 정도의 짧은 탐방이었는데요. 시간 자체는 짧았어도 내용이 만만치 않아 다음에 진행할 때는 내용을 좀 덜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랑을 함께한 KM님도 소회를 남겨주셨는데요. 한국사 시험을 통해 6월 항쟁에 대해 대략 알고 계셨지만 이렇게 관련된 장소를 직접 둘러보신 건 처음이라고 하셨어요. 향린교회 같은 경우는 탐방 프로그램이 아닌 상태로 그냥 지나갔다면 '음. 저런 교회가 있구나' 정도로 생각이 그쳤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더해서 도입 부분인 을지로 인쇄거리에서 민주화 운동이 대단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소시민들에 의해서도 완성됐다는 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의견 남겨주셨어요!

     

     


    문화재유랑단의 활동이 궁금하신 분들은 유랑단 홈페이지에 방문해주세요!

    탐방 문의: munhwajae.urang@gmail.com

    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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